보상금 주는 민간보험 가입… 더 타내려 퇴원 미뤄

가벼운 증상에도 "입원하겠다"… 일부 병원은 묵인

중복 가입땐 '수입' 더 늘어… '의료 과소비' 부채질

경기도 성남시 B병원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최모(64)씨는 20일째 병상에 머물러있다. 수술 자리가 완전히 회복되어 집에 가도 좋다는 의료진의 권유에도 그는 퇴원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가 병원을 지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가입한 민간보험회사로부터 수술 보험금은 물론, 입원 하루당 8만원의 보상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에서 최근 대장암 수술을 받고 인공항문을 차고 있는 김모(55)씨. 그는 퇴원 후 간호사가 집으로 방문하여 회복을 돕는 이 병원의 가정간호 서비스를 거절하고 퇴원하자마자 인근의 중소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명목상으로는 수술 후 후유증 관리지만 실은 병원 외래를 자주 다니면서 통증 치료나 인공항문 관리를 받을 바에야 조그만 병원에라도 입원하고 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그 역시 암 수술 비용과 입원 보상금을 받는 이른바 민간 '암(癌) 보험'에 가입해 있는 상태다. 그는 이곳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대학병원에 항암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이 두 사례는 최근 국민건강보험 외에 민간 보험회사가 판매하는 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급속히 늘면서 나타나는 '의료 과소비' 현상의 일부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1500만 명이 '수술하면 얼마' '입원하면 얼마' 하는 식으로 의료비를 보상하는 '정액형' 민간 의료보험 상품이나 환자가 지불한 의료비를 보험사로부터 100% 돌려받는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 등에 가입하고 있다(손해보험협회 자료). 지난해 이뤄진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서는 국민 63.7%가 최소 한 개 이상의 민간의료보험 상품에 가입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민간 의료보험이 입원을 위주로 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입원을 부추기는 현상이 빚어진다는 점이다. 서울 목동에서 중·소병원을 운영하는 김모 원장은 "외래로 와서 찍어도 되는 MRI나 CT 검사를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은 굳이 입원해서 진료를 받으려 한다"며 "경미한 증상에도 입원시켜 달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모두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병원 입장에서도 환자들의 이 같은 요구가 병원수익을 올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런 환자들을 말리지 않는다. 의사와 환자 모두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만큼 '의료 과소비'에 대한 도덕적 해이도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 150여 개 중소병원의 경우 환자 1인당 입원 일수가 2003년 평균 11일에서 계속 늘어나 2007년에는 15일로 늘어났다. 5년 새 50%가 증가한 것이다. 입원 한 건당 진료비도 2003년 평균 101만원에서 2007년에는 130만원으로 늘어났다(2007 건강보험 통계연보). 그 기간 외래 진료비는 연 평균 3.9%의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가 작년에는 되레 전년에 비해 15.6% 떨어졌다.

특히 민간의료보험에 중복 가입한 경우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백내장 수술의 경우 '정액형 보험'에서 대개 5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어떤 환자가 이런 상품 3개에 가입했다면 150만원을 받는다. 백내장 수술의 경우 치료비가 100만원 정도인데, 이 중 환자 부담은 30만원 정도다. 따라서 3군데 중복 가입한 환자들은 수술비로 30만 원을 내고 보험사들로부터 총 150만원의 보상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현재 민간의료보험 가입자 3명 중 한 명꼴로 여러 보험상품에 중복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의료 과소비' 현상은 건강보험재정 압박요인이 된다. 불필요한 장기 입원으로 인해 건강보험에서 입원비 명목으로 지출되는 금액이 늘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위원은 "의료 행위에 따라 보상금을 주는 정액형 보험을 줄여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도 '의료 과소비'를 막기 위해서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에게도 일정 수준의 부담금을 내도록 권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액형'과 '100% 보상형' 의료보험 상품이 판매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하지만 민간 보험회사들은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 진료비의 60% 수준만 지급하고 있어서 중병을 앓을 경우 본인이 내야 할 의료비가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민간의료보험을 규제할 경우 그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대 경제학부 사공진 교수는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면 앞으로 그 피해는 보험회사들에 돌아간다"며 "보험업계가 자율적으로 시장 원리에 맞게 의료비 보장 형태를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1@chosun.com